말을 위한 기도, 이해인 수녀 시
오래전 학교 선배와 같이 게임을 할 때의 일이다.
매너플레이를 하여 게임내 칭찬도 많이받아 '매너 좋은 소환사'라는 타이틀도 받았었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런 매너 플레이는 잊은지 오래였다. 팀원이 내 플레이와 나와 맞지 않다고 욕설을 해대면, 나도 그에 지지않으려 별 시덥잖은 트집을 잡으며 똑같이 아니면 더 심하게 상대를 물어뜯곤 했다.
그러던 도중 선배가 그런 나의 모습을 추하다 여겼는지, 이해인 수녀님의 '말을 위한 기도'라는 시를 읽어보라고 말씀하셨다. 그 선배는, 그 날 나와 더 이상 게임을 같이 하지 않았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놓은 말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속에서
좋은열매를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언어의 나무
내가 지닌 언어의 나무에도
멀고 가까운 이웃들이 주고간
크고 작은 말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둥근 것 모난 것
밝은 것 어두운 것
향기로운 것 반짝이는 것
그 주인의 얼굴은 잊었어도
말은 죽지 않고 살아서
나와 함께 머뭅니다.
살아 있는 동안 내가 할 말은
참 많은 것도 같고 적은 것도 같고
그러나 말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세상살이
매일 매일 돌처럼 차고 단단한 결심을 해도
슬기로운 말의 주인이 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날마다 내가 말을 하고 살도록 허락하시고
하나의 말을 잘 탄생시키기 위하여
먼저 잘 침묵하는 지혜를 깨우치게 하소서
헤프지 않으면서 풍부하고
경박하지 않으면서 유쾌하고
과장하지 않으면서 품위있는
한 마디의 말을 위해
때로는 진통겪는 어둠의 순간을
이겨내게 하소서
내가 어려서부터 말로 저지른 모든 잘못
특히 사랑을 거스른 비방과 오해의 말들을
경솔한 속단과 편견과
위선의 말들을 용서하소서
나날이 새로운 마음, 깨어있는 마음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내 언어의 집을 짓게 하시어
해처럼 환히 빛나는 삶을
당신의 은총속에 이어가게 하소서
-말을 위한 기도, 이해인
내가 언제부터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나쁜말을 들었다는 핑계로 똑같은 행동을 하며, 내 자신이 서서히 물드는걸 알면서도 방치했겠지. 온라인에서의 상대는 나와 대면하진 않았지만 불쾌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상대가 욕을 해댄다 생각해보면 더 기분 나빴을 것 같기도 하다. 나쁜 말을 들었다고 해서 내 자신이 똑같이 물들어 갈 필요는 없었는데
어떠한 이유에서건, 내 행동이 잘못되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나는 사회로 발을 내딛은지 얼마 되지 않았다.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이 사회에서 서로 함께 지낸다는 것이, 학생이나 군인일때와는 제법 다름을 자주 느낀다. 함께 지내는 타인과의 차이나 불편을 떠나. 말.
말이라는 것에 가장 많은 신경을 쏟고 그만큼 신경이 쓰인다.
듣고 있는 상대에게 수준없는 말을 마구 내뱉고, 자신은 반대의 것을 듣고싶어 한다. 자신이 무슨말을 내뱉은지 조차 기억을 못하고, 결과는 회피하려 하며 손가락질 할 것을 찾는다. 지금 생각해도 열이 뻗치는 상황들이고 더럽고 역겨운 행동들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나쁜말을 들었다는 이유로 속앓이 하며 성을 내었고
나쁜 말과 생각들을 서슴치 않아하며, 굳이 필요없는 말들까지 주위사람에게 해댔다.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고자 한 그런 행동이, 주변까지 더러움을 퍼뜨린건 아닌지 지금은 후회스럽다.
그러면서 내 과거의 언행 또한 더럽고 역겨웠는가 걱정스레 곱씹어본다.
그동안의 내 언행의 인과응보일지도 모르겠다. 그 기분 나빴던 순간들을 기억하며, 내 자신은 타인에게 그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언제나 기억하고 조심하며, 기필코 그렇게 살아가겠다.
헤프지 않으면서 풍부하고, 경박하지 않으며 유쾌하고 과장하지 않으면서 품위있는 말을 하기엔 배움과 생각이 짧은 내 자신에겐 어려운일 일수도 있겠지만, 상대를 치켜 세우진 않더라도 업신여기지 않으며, 모르는 상대로 책임을 돌리지 않고 교양있는 언행이 아니더라도 듣기 거북한 말은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겠다.
지금 이 생각과 다짐을 언제 잊을지 모른다. 그래도 나는, 꽤 괜찮은 친구, 만날만한 선후배, 혹은 그런대로 봐줄만한 사람이 되기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자신의 행동을 돌아볼 생각이다.
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 선배에게 감사드리며 나는 내일부터 다시 출근을 해야한다.
하시발. 지금 마지막으로 욕 한번만 해야겠다. 시이이이벌!! 금토일은 언제나 빠르다. 월화수목금퇼 그래도 어깨 피고, 눈알 종아리에 힘주고 이 꽉 깨물어야지.